[번외]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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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병영생활 감사노트 : 소설

[번외]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

by DJ.Girin 2020. 4. 30.

 

Time to go Why : DJ.Girin


“네가 음악을 한다고? 안 된다.”

 음악을 한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의 반응이었습니다. 강경한 말투였습니다. 싫음을 넘어서서 증오한다는 느낌을 받는 말투였습니다. 처음 보는 태도에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하고 가져가려무나...”

 할머니와 저와는 깊은 애증관계입니다. 어렸을 적의 제가 방황을 할 때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투정과 어리광 등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탈선을 하며 도벽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돈을 훔쳐서 쓴 적이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아셨는데, 혼을 내면 더 삐뚤어질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화를 내서 다그치지 않고, 부드럽게 타일렀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항상 집안에서 잘못을 하면 큰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게 되면서도 가족들에게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할머니께서 감싸주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면 다 따랐습니다.

 

“음악 말고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

 음악을 한다고 말씀 드린 뒤 하는 맨날 들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할머니와 의견 대립을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누나들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 정도만 가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집착하듯이 저에게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음악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자 화도 내실 때도 있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저는 할머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분만은 아니다. 왜 이렇게 싫어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며 대학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계속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실기시험을 할머니 몰래 응시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에 성공을 해버렸고, 할머니에게 숨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저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합격통지를 가져온 저를 보시면서 무슨 반응을 보이셨는지 아십니까? 쓰러지셨습니다.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다고요! 화병으로 쓰러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딴따라를 한다니 내 속 썩인 니 할애비가 떠오르는구나!”

 쓰러진 할머니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먼저 일어나셔서 한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할머니의 사연을 이 날에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서로 확인을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가족을 성실히 돌보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으셨습니다. 이처럼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할머니의 속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증오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하고 가져가려무나...”

 할머니와 저와는 깊은 애증관계입니다. 어렸을 적의 제가 방황을 할 때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투정과 어리광 등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탈선을 하며 도벽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돈을 훔쳐서 쓴 적이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아셨는데, 혼을 내면 더 삐뚤어질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화를 내서 다그치지 않고, 부드럽게 타일렀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항상 집안에서 잘못을 하면 큰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게 되면서도 가족들에게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할머니께서 감싸주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면 다 따랐습니다.

 

“음악 말고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

 음악을 한다고 말씀 드린 뒤 하는 맨날 들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할머니와 의견 대립을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누나들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 정도만 가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집착하듯이 저에게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음악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자 화도 내실 때도 있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저는 할머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분만은 아니다. 왜 이렇게 싫어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며 대학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계속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실기시험을 할머니 몰래 응시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에 성공을 해버렸고, 할머니에게 숨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저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합격통지를 가져온 저를 보시면서 무슨 반응을 보이셨는지 아십니까? 쓰러지셨습니다.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다고요! 화병으로 쓰러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딴따라를 한다니 내 속 썩인 니 할애비가 떠오르는구나!”

 쓰러진 할머니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먼저 일어나셔서 한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할머니의 사연을 이 날에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서로 확인을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가족을 성실히 돌보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으셨습니다. 이처럼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할머니의 속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증오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오해를 풀어갔습니다. 할머니도 조금씩 이해를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감정의 골을 덮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음악을 하는 저의 모습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이해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늴리리야 사랑노래 배불 때에 수십만 지누다.”

 사실 할머니께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항상 많은 양의 테이프가 집에 있었습니다. 라디오에 항상 귀를 기울이시며 노래를 따라 부르시곤 하셨습니다. 위 노랫말은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사를 듣고 적어달라고 하신 부분입니다.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어서 적어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금은 할머니는 친척 집으로 가셔서 따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군 입대를 해서 휴가를 나갈 때 마다 뵐 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치매 판정이 나셨습니다. 도대체 왜... 간혹 그런 걱정을 합니다. 전역을 하면서 저에 대한 부분도 잊어가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같이 쌓은 추억을 간직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욕심일지 모르겠습니다.

 

“추억이 사라지는 병 가운데에서도 음악으로 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할머니께서 저와 같이 노래를 불렀던 음악들이 있습니다. 이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저와 함께 했던 추억을 지켜드릴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시원하게 들려드릴 수 있는 카제트와 테이프를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더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고 싶을 뿐입니다. 전역을 앞당 길 수 없다면, 휴가를 나가서라도 자주 들리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스피커 사들고 가서 할머니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치매와 싸우고 있는 할머니와 같이 노래를 부르며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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