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아노 때문에 여기 다시 왔어요
언제 연주 후의 일이다.
마지막 곡을 막 끝내고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한 손님이 다가왔다.
"지난번에도 왔었는데... 기억하실진 모르겠네요. 그때 정말 힘들어서 술 한잔하러 왔다가 우연히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됐거든요. 오늘은 일부러 찾아왔어요. 당신 피아노 때문에."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생각났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무작정 재즈바에 들어갔다가 피아노 소리에 취해 단골이 됐었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 자리에서 연주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제는 내가 그때의 그 피아니스트처럼 누군가의 '우연한 발견'이 되어있다는 거다. 음원유통사에서 일하며 늘 숫자로 보던 '청취자'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 내 앞에 서 있다.
가끔 물어온다. "본업이 따로 있다면서요? 그런데도 매일 밤 연주하시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한다.
"네, 힘들죠. 하지만 이런 순간들 때문에 계속하게 됩니다."
사실 투잡이기에 더 특별한 것들이 있다.
낮에는 음원 차트를 들여다보며 시장의 흐름을 읽고, 밤에는 그걸 완전히 잊은 채 즉흥연주에 몸을 맡긴다. 두 개의 다른 세계를 오가는 이 묘한 균형이, 내 음악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제는 프로듀서인 베이시스트가 새로 작업 중인 곡의 데모를 들려줬다.
드러머는 헬스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손님 이야기를 들려줬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낮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그걸 음악으로 풀어낸다.
결국 음악이란 게 그런 거 아닐까.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감정이, 우리의 이야기가
소리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
그리고 그 마법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주는 것.
오늘도 누군가는 우연히 이 재즈클럽의 문을 열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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