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숫자로 설명하려는 시도. AI는 지금 재즈의 가장 신비로운 요소인 '그루브'와 '스윙'을 0과 1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랑을 화학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처럼 야심차고도 무모한 도전이다.
완벽한 부정확성의 미학
재즈의 스윙은 정확히 3:1의 비율로 연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비율은 연주자마다, 곡마다, 심지어 한 곡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트 블레이키의 스윙은 엘빈 존스의 그것과 달랐고, 토니 윌리엄스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다. 그들의 스윙이 특별했던 이유는 '완벽한 부정확성' 때문이었다.
감정의 수치화
AI 기업들은 지금 재즈 드러머들의 연주를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매 순간의 타이밍을 마이크로초 단위로 측정하고, 강약의 패턴을 수치화하고, 심지어 드럼스틱이 심벌즈를 치는 각도까지 계산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미술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좌표값으로 설명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정말 이런 방식으로 그루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측정할 수 없는 것들
그루브는 단순히 리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연주자들 사이의 텐션이고, 청중과의 교감이며, 그 순간의 공기까지도 포함하는 총체적 경험이다. 메일스 데이비스의 밴드가 가졌던 그루브는 스튜디오의 온도, 연주자들의 컨디션, 심지어 그들이 나누었던 눈빛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AI의 딜레마
여기서 AI는 근본적인 딜레마에 봉착한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더 많은 변수를 고려할수록, 역설적으로 그루브의 본질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루브는 각각의 요소를 더한 것이 아닌, 그것들이 마법처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오류의 가치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들은 종종 '실수'에서 탄생했다. 존 콜트레인이 코드를 잘못 짚었을 때, 마일스 데이비스가 템포를 놓쳤을 때, 그 순간들이 오히려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었다. AI는 이런 창조적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AI는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까?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
하지만 이것이 AI의 재즈 분석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AI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루브와 스윙의 수치화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재즈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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