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뒤의 음표를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재즈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하지만 AI는 이미 다음 음표를 계산하고 있다. 수만 가지의 가능성 중에서 가장 '적절한' 음표를 확률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일까, 아니면 정교한 계산일까?
확률과 직관 사이
AI의 즉흥연주는 확률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특정 코드 진행에서 다음에 올 수 있는 음표들의 확률을 계산하고, 그중에서 선택한다. 놀랍게도 이 방식은 꽤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키스 재럿이 즉흥연주를 할 때, 그는 확률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느꼈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차이다.
순간의 마법
재즈의 즉흥연주는 순간의 예술이다. 관객의 호흡, 동료 연주자의 에너지, 그날의 날씨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존 스코필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좋은 솔로는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나온다." 이것은 AI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는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수의 미학
인간의 즉흥연주에는 실수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음표, 삐걱거리는 프레이즈, 흐트러지는 리듬. 하지만 이런 실수들이 오히려 음악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테리엇 블랑샤드는 "완벽한 연주보다 정직한 연주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AI는 프로그래밍된 '실수'만 할 수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실수가 아니다.
자유의 역설
더 흥미로운 것은 자유에 대한 해석이다. AI는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보다 더 '자유롭다'. 하지만 이 자유에는 영혼이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란 선택의 폭이 아닌, 그 선택의 의미에서 오기 때문이다. 찰리 파커가 특정 음표를 선택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그의 삶의 표현이었다.
감정의 진실성
AI는 슬픈 즉흥연주를 할 수 있다. 기쁨에 넘치는 솔로도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감정일까? AI는 진정으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픈 음악의 패턴을 재현하는 것이다. 빌 에반스의 우울한 발라드에는 그의 실제 우울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AI의 즉흥연주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적 표현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산된 자유, 프로그래밍된 즉흥성. 이것은 모순된 개념이지만,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새로운 미학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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